건축물이 말랑말랑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예를 들자면, 주택들이 콘크리트같은 단단한 것이 아니라 섬유처럼 유연한 자재로 지어졌다면 어떨까 상상해 볼 수 있다. 삶은 우리가 무슨 종류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 딱딱한지, 아니면 푹신푹신한지가 결정적인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딱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는 공간은 근본적으로 단단하며, 절대로 휘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전제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실이 모양을 바꾼다거나, 바닥과 천장의 간격이 바뀐다거나, 가구들이 위치를 저절로 바꾼다는 이야기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거주환경만 바뀌면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것들이다. 단순히 건축자재만 바꾸어도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의 경계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몇몇 사람들은 건물을 짓는 데에 있어서 콘크리트나 목재같은 단단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런 재료들은 값이 비쌌고, 운반하기가 어려웠으며, 생산하려면 자연을 크게 훼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지진과 같은 충격에 의해 건물이 붕괴되는 것을 막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바로 건물을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몇몇 건축가들은 저예산과 신속성을 만족시켜 줄 새로운 건축자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은 앞으로 건설에 일어날 새로운 혁신들이 인간의 생활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대담한 시도들을 감행할 수 있었다.
처음에 몇몇 학자들은 고무처럼 유연성이 있는 콘크리트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했고, 그들은 실제로 꽤나 흥미로운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다만 문제점은 그것들의 탄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유연한” 재료들이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루며 항상성을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무리 철근과 같은 단단한 뼈대가 버티고 있다 한들, 말랑말랑한 콘크리트 벽들은 중력이나 공기같은 다양한 힘들에 노출된 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모양이 뒤틀리는 현상을 면치 못했다. 머지않아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모양세를 바꾸는 똑똑한 합성재료들도 나타났지만, 이러한 재료들이 주는 특유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콘크리트를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던 중, 상당히 어처구니 없는 재료가 혁신적인 건축자재로 이용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한 건축가가 아파트 빌딩을 짓는 데에 콘크리트 대신 합성섬유를 사용한 것이다. 물론 5층짜리 건물이니만큼 기본적인 뼈대는 철근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철근과 철근 사이의 공간에는 콘크리트 대신에 나일론같은 여러 겹의 촘촘한 망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철근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벽과 바닥을 막론하고 죄다 마시멜로처럼 푹신푹신하고 탄력이 있었으며, 건물 안의 바닥 위를 걸으면 마치 트램펄린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벽에 기대면 마치 안락의자처럼 등이 쑥 들어갔으며, 천장을 찌르면 그와 동시에 윗층의 바닥이 들썩거렸다. 그야말로 벽의 모서리를 제외한 건물의 모든 부분이 고무처럼 유연했고, 건물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어느 유기체의 몸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푹신푹신한 건물은 그 후 유행처럼 세계 곳곳에 번지기 시작했다. 재료값이 저렴하다는 점과 기존의 건축양식과는 차별화된다는 점이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남긴 게 틀림없었다. 집들과 사무빌딩의 상당수가 섬유로 지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새로워진 생활양식에 적응해야 했다. 우선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공간이 변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예컨대 섬유로 만들어진 집의 바닥 위에 한 발자국을 내딛으면 그 부분의 바닥이 움푹하게 들어갔고, 주변의 물건들은 그 움푹 들어간 곳을 향해 움직였다. 또한 이 행동은 밑에 층의 이웃집 천장을 볼록하게 만들었으며, 그 집의 이웃으로 하여금 자신이 현재 바닥의 어느 위치를 밟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섬유로 지어진 생활공간은 이처럼 훨씬 역동적인 것이다. 예전의 단단한 건축물들과는 달리, 이 새로운 건축물은 거주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동에 더욱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했다. 거주자의 행동이 주변 환경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섬유 기반의 건물들이 가진 놀라운 특징이었다.
말랑말랑한 건물들의 수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운동신경과 주의력은 놀랍도록 향상되었다. 역동적인 벽과 바닥의 움직임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 하나하나가 주변 공간을 어떠한 형태로 왜곡시킬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인간의 인지능력에 많은 변화를 준 것이다. 예전의 인간이 경직된 공간이라는 톱니를 돌리는 기계적인 생활방식을 훈련받았다면, 지금은 인간은 유연한 공간, 즉 상호작용이 가능한 역동적 시스템과의 조화를 훈련받고 있다. 이는 공간을 직선적, 그리고 수직적인 차원으로 보던 기존의 수학적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 “공간의 왜곡”과 같은 표현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덜 추상적으로 비추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