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둠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을 빛으로 채워넣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밤마다 어둠의 지배 하에 놓였고, 그때마다 인류는 포식자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성능 좋은 빛으로 사방을 채워나가는 과정은 우리 모두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어둠은 원래 세상을 뒤덮고 있었고, 창조의 과정은 바로 그런 어둠의 바다를 빛으로 밝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온통 빛으로 둘러싸인 지금 이 시대에는 오히려 암흑에게 약간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참된 창조의 과정을 완성시킬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인위적으로 어둠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빛을 만드는 기술 못지 않게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남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비밀스러운 장소라던가, 빛이 없는 곳에서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동물원 속 생물들의 우리라던가, 숙면이 필요한 불면증 환자의 침실과 같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빛살들 속에 어둠만을 위한 공간을 조성해 줄 기교가 필요했다. 빛이라는 현란한 광자의 파동을 희석시켜서 고요함으로 승화시켜 줄 “어둠의 기운”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느날 전구가 쏘는 빛에 대항할 망각한 라이벌이 누군가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것은 반전구 (Anti-lightening bulb) 라고 불리우는 전구 비스무리한 물건이었는데, 보기에는 전구와 비슷했으면서도 전구와는 정반대의 기능을 수행했다. 예컨대 사방으로 빛을 쏘는 전구와 달리, 반전구는 빛을 상쇄시켜 버리는 파동을 쏘았다. 그 결과 반전구를 켜놓고 있으면 그 자체가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가 어두침침해졌다. 예전의 인류가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 냈다면, 지금의 인류는 빛 속에서 어둠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성공한 것이다. 가림막 없이도 혼자서 빛을 차단시켜 주는 반전구는 불티나게 팔렸다. 햇살이 쨍쨍한 날의 자외선 차단에는 이마에 설치하는 소형 반전구가 그만이었고, 복사열로 인한 도심 속의 무더위에는 곳곳에 반전구 가로등을 설치하면 안성맞춤이었다. 예전에 파라솔을 설치해야만 했던 해안가는 반전구 몇 개만 켜놓으면 저절로 넓다란 그늘이 형성되었다. 한마디로 반전구는 빛에 대항하는 직접적인 무기였다.
전구와 반전구의 조합은 일종의 천상의 하모니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빛이 필요한 곳에는 전구를, 빛이 없길 원하는 곳에는 반전구를 설치하는 자유를 누렸고, 이런 식으로 빛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마음대로 제어하는 능력은 새로운 미학적 시도들을 낳았다. 예컨대 눈부신 빛의 향연으로만 가득 찼던 예전의 실내 조명장식들은, 적당한 양의 어둠을 제공하는 반전구 장식들과 조합되어 더욱더 다이나믹한 빛의 연출을 가능케 했다. 예컨대 반전구들로 뒤덮인 천장 한복판에 자리잡은 전구 하나는 마치 밤하늘의 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유흥가의 간판에 달린 화려한 네온사인은 반전구로 뒤덮힌 나머지 부분의 증폭된 어둠 덕택에 더욱더 광채가 두드러졌다. 예전에 사람들이 빛이라는 하나의 변수만을 사용했다면, 요즘에는 사람들이 어둠이라는 두번째의 변수 또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선과 악과 같은 음양적 개념들이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식의 윤리적인 믿음으로도 풀이되어 철학사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문제점이라면, 반전구는 범죄에도 자주 악용되었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은 반전구로 자신을 둘러쌈으로써 어둠이라는 보호막을 입은 채 밤중에 일을 저질렀고, 비밀리에 하늘에 띄워진 폭격기들은 반전구로 무장함으로써 성공적인 야간비행을 할 수 있었다. 반전구야말로 어둠 속에 동화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또다른 어둠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해 내는 미묘한 눈썰미를 기르기 시작했다. 어둠에 더욱더 민감해지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고, 야맹증은 예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질병으로 치부되었으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파악하기 위한 감지용 장비들이 유행했다. 범죄의 가장 고약한 형태는 소리없는 반조명탄을 터뜨려서 순간적으로 사방을 어둡게 한 채 피해자를 급습하는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경찰은 어딘가에서 갑작스러운 어둠이 찾아오면 뭔가 소동이 왔음을 짐작하고 그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혹자는 이런 경찰의 심리를 이용해서 일부러 정전사태를 일으킨 직후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반전구는 꽤 흥미로운 발명품임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어둠이라는 것이 단순히 “빛이 없음”을 뜻했는데, 지금은 반조명 덕택에 “어둠이 있음”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긴 것이다. 빛과 어둠은 이제 양수와 음수처럼 둘 다 존재하면서 서로 균형을 맞추는 상호보완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