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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입자

Author: Youngjin Kang

Date: Summer 2012

어느 순간부터 잠에 대한 의혹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곧 나타날 결과물에 비하면 꽤나 순조로웠고, 사람들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삶의 궁금증들 중 하나가 갑자기 해소되자 뜻밖의 기쁨을 표했다. 그 궁금증이란 바로 잠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왜 자는가?” 이 질문은 언뜻 보면 스케일도 안 크고, 심오해 보이지도 않으며, 흔히 일반인들이 도저히 넘볼 수 없을 지경의 높은 지성을 가진 자들이 입에 담을 만한 문장같지도 않다. 질문 자체가 이미 과학적으로 해명된 사실을 어린이용 과학교과서에 흥미를 돋구는 용도로 삽입된 자문자답의 일부분과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사실 잠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래되었고, 또 왜 우리가 매일 몇시간을 잠자는 데에 할애해야 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렇다, 이 질문은 “우리는 왜 사는가?” 혹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답이 나오지 않는 세계적인 불가사의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어쨌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바로 “잠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예로부터 적어도 하루 6시간 이상을 잠자리에 누워서 보냈다 (아니면 적어도 그럴려고 노력했다). 또 우리는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모든 이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그 발견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학계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입자를 발견했다. 질량은 거의 없고, 일종의 파장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전자와 유사했는데, 움직임은 광자와 유사했다. 한가지 신기한 점은 이 미지의 입자들이 유기체를 이루는 거대분자들 사이에서는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지면서 굴절을 심하게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입자들은 허공이나 땅에서는 거의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지만, 생물의 몸을 통과할 때는 거의 0.2초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유기체 속에서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을 뿐만 아니라, 방향이 계속해서 휘어지는 관계로 제자리 걸음을 몇번씩이나 했기 때문이다. 물론 0.2초라는 시간은 그닥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빛살과 함께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0.2초씩 지체하다 보면 곧 온몸이 이 입자들로 포화상태에 이르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가 이 포화상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하기로 했다. 그리고 곧 그들은 인간의 두뇌활동이 그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개골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뇌파는, 몸 속에 쌓여있던 입자들을 동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다만 정신이 멀쩡히 깨어있을 때의 뇌파는 인체로 들어오는 입자들을 다시 몸 밖으로 내보내는 속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몸 속으로 입자가 10개 들어올 때, 깨어있는 상태의 뇌파는 몸 밖으로 입자를 겨우 9개밖에 못 내보내는 것이다. 온종일 몸 속으로 들어오는 입자들의 10%를 그대로 몸 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이는 말이 안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제아무리 뇌가 활발하게 뇌파를 뿜어낸다 할지라도 몸은 곧 포화상태를 면할 수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에 대한 의문은 씻은 듯이 풀렸다. 학자들은 인간이 잠을 잘 때 몸 밖으로 얼마만큼 입자들을 뿜어내는지를 측정했고, 곧 깨어있을 때보다 잠을 잘 때의 뇌파가 훨씬 더 많은 입자를 몸 밖으로 뽑아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예컨대 몸 속으로 입자가 10개 들어올 때, 잠을 자는 상태의 뇌파는 몸 밖으로 13개에 가까운 수의 입자를 내보내는 것이다. 이 정도의 비율이라면 하루에 몇시간 정도 잠을 자면 몸 속에 축적된 입자들을 모조리 내보낼 수 있다.

여기까지 결론이 다다르자 학자들은 놀라움에 휩싸였다. 우리가 매일 꼬박꼬박 잠을 자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몸에 쌓여있던 미지의 입자들을 내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지상의 모든 생물에게 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 그것은 바로 인류가 새롭게 발견한 이 입자 때문인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입자를 ‘수면입자’라고 이름지었다. 말 그대로 이것은 “수면을 부르는” 입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발견을 토대로 구체적인 가설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말에 따르면, 인간은 항상 장소를 불문하고 수면입자의 파장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마치 빛이나 공기처럼 수면입자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매 시간마다 거의 일정한 양의 수면입자들이 몸 속을 관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면입자의 속도가 몸 속에서 대폭 느려지다 보니 점차 몸 속에는 많은 양의 수면입자들이 축적되게 되고, 인간의 두뇌는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뇌파를 통해 수면입자들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므로, 인간은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서 몸속에 축적된 수면입자들을 내보내기 데에만 집중적으로 몰두하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 안에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수면입자는 워낙에 투과력이 좋기 때문에 두꺼운 납덩어리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통과한다. 유기체를 통과할 때만 다소 심한 굴절과 감속현상이 일어나지만, 어쨌든 결국은 그것도 통과한다. 한마디로 수면입자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지구상에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수면입자의 영향력에서 해방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수면입자가 몸 속에 축적되는 걸 사전에 방지할 수만 있다면, 살면서 잠이라는 것을 잘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루 24시간을 쓸데없이 수면입자 배출에 허비하지 않고 귀중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조만간 인공적으로 수면입자들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기술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다면 그건 마치 전구의 발명이 밤을 없애버렸듯이 인간의 삶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