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List

자급자족

Author: Youngjin Kang

Date: Summer 2012

지금의 산업체제가 죽고, 소비문화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론 무슨 큰 일이야 안 일어나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선 소비자의 권한을 박탈당한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소비품을 구입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 말은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하는 일도 상당히 까다로워질 거라는 점이며, 그 곧 스스로 알아서 생필품을 만들어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몇백년간 이어져 온 산업시스템이 어느 한 시점에 붕괴되어 버린다는 것은 그닥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진다면 우린 어떤 새로운 삶을 맞딱뜨리게 될까?

우선 인류 전체가 퇴보를 해서 농업사회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산업혁명이 끝날 무렵의 미래인들이라면 이미 그들의 위장이 가공 안 된 천연식품을 소화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푸른 잎이나, 등푸른 생선이나, 익히지 않은 과일같은 “미개한” 음식들은 독소와도 같이 작용해서, 아주 약간의 양만으로도 그들을 며칠간 끙끙 앓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공장 안에서 대량으로 생산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가공식품을 만들어낼 기술력은 유지할, 아니 유지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문명인들의 발이 땅바닥에 적응하기엔 너무 연약해져서 항상 신발을 신어야 하는 현상과도 같다.

그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미래의 인류는 농업으로 회귀하려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농업을 행한다 할지라도 자동화된 기계한테 시킬 망정, 절대로 땡볕 밑에서 곡괭이질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미래인들에게는 땅에서 자라나는 식품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기술력이 있다. 바로 영양소의 자급자족을 가능케 해주는 ‘영양분 제조기’들이 그것이다. 우선 탄수화물 제조기를 살펴보자. 그것은 탁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의 조그만 기계인데, 마치 에스프레소 머신처럼 생겼다. 위에는 우산처럼 펼쳐지는 접이식 태양열 전지판이 달려있고, 측면에는 물탱크와 호흡기가 달려있으며, 기계 밖에는 빨대같은 것이 나와있다. 기계가 작동하면 그 빨대를 통해서 국수같은 것이 조금씩 만들어져 나오는데, 그게 바로 녹말이다. 마치 식물처럼 이 기계는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탄수화물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전기의 힘 대신 광자의 힘으로 움직이니까 이것은 ‘전자제품’ 대신에 ‘광자제품’이라 부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탄수화물 제조기만 있으면 물론 영양실조에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3대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단백질 제조기’와 ‘지방 제조기’도 있어야 한다. 전체적인 윤곽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단백질 제조기의 경우에는 질소를 따로 흡입하는 장치와 추가적인 원소의 공급을 위한 탱크가 있고, 지방 제조기의 경우에는 포화지방이나 불포화지방이나 콜레스테롤 같은 종류별 지방들의 출력비율을 조절할 수 있는 레버가 달려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기계들이 아주 최소한의 손길만으로도 잘 작동한다는 것이며 (이 덕분에 이들은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며 길러야 하는 식물들보다 훨씬 더 사랑받는다), 따라서 탄수화물 공급기 20대에 단백질 공급기 10대에 지방 공급기 10대 정도만 있어도 완벽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물론 변비예방과 추가 영양분 섭취를 위해서는 섬유소와 비타민과 미네랄 등을 한데 모아놓은 종합영양제도 필요하다.

섬유소 제조기도 생필품으로 애용되긴 하지만, 이는 식용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통신 기기를 제작하기 위한 것이다. 그냥 섬유소가 아니라 광자의 이동이 가능한 ‘광섬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기계는 햇볕과 물과 공기만을 이용해서 광섬유를 가느다란 실 형태로 뽑아내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광섬유는 ‘자동 뜨개질 기계’로 들어가서 조그만 헝겊조각들이 된다. 그것들은 ‘자동 재봉틀’의 상단에 종류별로 모이는데, 재봉들의 팔은 마치 조립할 레고블럭을 고르는 것처럼 원하는 종류의 광섬유 헝겊조각들을 그때그때 뽑아서 원하는 방향과 위치에 이어붙인다. 재봉틀이 작업을 끝내면 그 결과물은 마치 아무렇게나 얼기설기 뭉쳐진 실밥 덩어리처럼 조잡하다 (그러나 외관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그 복잡한 광섬유의 매듭들은 같은 무게의 전자회로보다 천 배는 더 정교하다).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져 있는 광섬유 뭉치는 ‘자동 압축기’의 틀 속에 들어가서 섬유가 파괴되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압축되는데, 이 마지막 과정이 끝나고 나면 마침내 직사각형 모양의 견고한 휴대용 기기가 탄생한다. 아까 언급했던 기계들이 모두 광자의 힘으로 움직이듯이, 광섬유로 이루어진 이 휴대용 기기도 광자의 힘으로만 움직인다. 따라서 이것은 ‘휴대용 광자기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며,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햇볕을 자주 쐬여줘야 한다.

물론 옛날에는 광자공학자들이 손수 수작업으로 바느질을 하며 광섬유 조각들을 이어붙였다. 당시에는 광자제품을 자동으로 생산할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때 광자제품은 하나당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렸으며, 바느질이 빠른 광자공학자가 가장 많이 벌었다. 요즘은 모두들 단 하나의 광섬유 조각에 모든 광자기기의 기능을 부여하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머지않아 타월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