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는 100년에 한번씩 고향을 버린 채 새로운 터전으로 집단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확히 한 세기에 한번씩만 대이동을 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은 상태로 평생을 보낸다. 예를 들어서 그들이 황량한 벌판에 도시 하나를 세우고 정착생활을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그들은 정확히 도시가 세워지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100년동안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데, 카운트다운을 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도시 밖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한마디로 철저한 정착생활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100년이 지나면 그들은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정든 도시를 떠나버린다. 그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과 각종 문서들을 모두 제자리에 남겨둔 채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도시를 파괴할 생각도 안 한다. 그냥 평소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시킨 채 떠나버린다. 도시를 떠나 또다시 집단이동을 시작한 그들은 곧 다른 한 곳에 정착해 도시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다시금 100년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이들의 행동패턴은 결국 100년의 정착생활과 며칠간의 유목생활이 번갈아가며 반복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한번 정착을 하면 정확히 한 세기동안 그곳에서의 삶만을 유지한다. 전염병이 돌거나 그 어떤 재해가 일어나더라도 대이동의 날 전까지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정착한 도시에서만 산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종교적, 윤리적인 믿음과 관련이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흔적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단순히 글과 그림같은 기록의 형태로만 남기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록이란 것은 과거의 지극히 추상적인 면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동체 간의 이해관계 같은 것 말이다.
100년을 주기로 정착생활을 하는 이들은 단순한 기록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과거를 보존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바로 100년에 한번씩 자신들이 살던 곳의 시간을 정지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를 행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살던 곳을 떠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빈 도시들은 지난 5700년의 역사동안 총 57개가 만들어져 왔다. 이들은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별 재난이나 침략을 당하지 않았고, 덕분에 지금까지 거의 처음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약에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가 첫번째로 건설된 도시에 방문한다면, 그는 지금으로부터 5700여년 전 사람들이 무슨 칫솔을 사용했고, 무슨 종이에 글을 썼으며, 심지어는 무슨 귀걸이를 착용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버려진 이 도시들은 일종의 “정지된 공간”들이다. 이들은 변화를 거부하며,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다. 이들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손길이 더이상 안 닿으면 태엽이 풀린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것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장소는 제각기 고유의 시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가지만 사람이 모두 떠난 도시의 시계는 멈춰버린다. 다른 말로 하자면, 평소에 살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사용하던 시계의 작동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시계를 구입하는 것과도 같다. 멈춰버린 시계들은 그 자체가 미이라처럼 건조, 응고된 시간이다.
100년마다 한번씩 이동한다는 그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살 수 있는 땅이 온통 과거에 지어진 도시들로만 가득 차 버리는 것이다. 드넓은 벌판이 새로운 도시를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에 이른다면, 그때는 어쩔 셈인가? 이러한 걱정은 어찌 보면 터무니없이 일찍 대두되었다. 누군가의 계산에 의하면 앞으로 약 38만년 정도까지는 그들이 100년주기 이동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마지막 남은 유일하게 빈 땅에 마지막 도시를 건설할 때, 그들은 무슨 느낌일까? 그들이 살던 이 땅이 3900개의 수많은 과거들로 채워지고, 이제 그들이 건설하는 새 고향이 마지막 과거가 될 거라는 것을 알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그들은 과거를 보존하는 데에 그렇게까지 핏대를 올리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대로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건설했던 도시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새로운 정착생활을 할 것 같다. 38만년 전의 조상들의 삶을 되도록이면 그대로 재현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그런 돌고 도는 고리로 생각할지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