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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가능성 - 2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3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바로 아무리 어항이 다양한 종류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한들, 어항 한가운데에 찻잔이 버티고 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설명되었듯이, "그 어떤 종류의 사물도 탄생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는 한, 임의의 공간이 취할 수 있는 상태의 수는 무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수"라는 것은 오로지 양적인 범위만을 뜻할 뿐으로, 이는 한가지 차원의 값밖에 나타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사각형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각형은 임의의 가로길이와 세로길이를 가지는데, 그 값들과 그에 따른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가로길이 = 10보다 작은 자연수.
(2) 세로길이 = 1 이상의 자연수.

길이가 자연수여야 하기 때문에, 사각형의 가로길이는 1부터 9까지로, 즉 9가지밖에 안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가로길이는 1부터 "임의의 자연수"까지로, 이 자연수는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그 값에 제한이 없다. 즉, 사각형이 취할 수 있는 세로길이의 범위는 "무한하다".

여기서 "종류"의 개념을 성립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지금 내가 사각형의 "종류"에 관해 논하려 한다면, 분명히 그것은 사각형의 가로길이와 세로길이를 둘 다 변수로 가지는 값이 될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가로길이와 세로길이의 조합이 사각형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가로길이가 x이고, 세로길이가 y인 사각형이 있다면, 그 사각형의 종류는 {x,y} 이렇게 x와 y를 원소로 가지는 집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조건들을 생각해 보자. 가로길이의 범위는 1에서 9까지로, 이는 x라는 원소가 총 9가지의 값을 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세로길이의 범위는 양(+)의 방향을 향해 무한정 뻗어있는데, 이는 즉 y라는 원소가 취할 수 있는 값들의 종류가 무한히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 x,y값들의 범위를 그래프상에 표시함으로써, 사각형이 취할 수 있는 "종류"의 범위를 시각적으로 확인해 보자. 일단 x값을 나타내는 가로축을 하나 그려놓고, 그 축에 수직인 방향으로는 y값을 나타내는 세로축을 하나 그려놓자. 그러면 (x,y)로 위치표현이 가능한 좌표가 하나 탄생할 것이다. 일단 y축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을 향해 나아가면서 1만큼의 거리에 한번씩 세로선을 총 9번 긋고, 그 다음에는 x축에서 시작하여 윗쪽을 향해 나아가면서 1만큼의 거리에 한번씩 가로선을 무한정 긋는다. 그러면 세로선들과 가로선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이 탄생하는데, 이 교차지점들이 바로 아까 말했던 사각형이 취할 수 있는 "종류"들이다.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사각형이 취할 수 있는 종류들의 갯수는 그 숫자만 따지면 무한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종류의 양 자체는 무한하지만, 종류의 범위는 유한하다"는 것이다. 사각형의 가로길이의 종류는 어차피 그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유한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세로길이의 종류는 한도 끝도 없이 무한히 많기 때문에, 혹자는 "무한"이라는 개념을 하나의 통일된 속성으로 오인하기 쉽다. 다만 세로길이가 만약에 "5 이상의 자연수"였다면, 이는 처음에 말했던 세로길이의 조건과는 다른 "범위"에 속하기 때문에, 비록 둘 다 무한한 수의 종류들을 취할 수 있다 할지라도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고 해야 옳다.

다시 어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 어항의 한복판에는 영원불멸의 찻잔이 위치해 있고, 어항이 취할 수 있는 종류의 수는 무한하다. 이제부터 어항의 종류를 하나의 숫자로만 표현해 보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어항의 종류는 0이라는 값으로 표현되고, 빈틈 없이 완전히 꽉 차 있는 어항의 종류는 [무한]이라는 값으로 표현된다. 텅 비어있다는 것은 티끌만치의 미립자조차 없는 상태를 말하며, 꽉 차 있다는 것은 어항의 모든 공간이 밀도가 제일 높은 입자들로만 가득 차서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만 여기서 혹자는 어항의 종류가 0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류가 0이라는 것은, 어항이 완전히 텅텅 비어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항 한가운데에 찻잔이 항상 버티고 있는 한, 어항의 종류가 0이 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대신에 찻잔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텅텅 비어있을 때의 어항의 종류를 나타내는 임의의 상수 a가 있을 것이며, 따라서 찻잔이 존재하고 있는 어항이 취할 수 있는 종류의 범위는 찻잔이 없을 때인 [0, 무한)이 아니라, [a, 무한)이 될 것이다 (찻잔이 있다 할지라도 무한의 영역은 여전히 무한이다. 왜냐하면 찻잔의 존재유무와는 상관없이, "빈 공간"과 "꽉 찬 공간" 사이의 공간의 종류들은 0에 수렴하는 아주 미세한 차이들까지 포함함으로써 그 종류가 어차피 무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찻잔이 없는 어항의 종류의 범위는 [0, 무한)인 반면에, 찻잔이 있는 어항의 종류의 범위는 [a, 무한)이다. 이는 찻잔의 존재유무가 종류의 범위를 특정 값으로 한정시킴을 뜻한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까 언뜻 명시했겠지만, 만약에 어항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사물들의 종류의 갯수가 무한하다면, 그 무한한 종류의 사물들 중에는 "영원히 한 위치에만 머물러 있는" 사물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어항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 할지라도 사물의 크기는 무한히 작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원불멸의 사물들 또한 언제나 무한하게 많은 수로 어항 속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이때 파악해야 할 점은, 어항 속에서 영원불멸의 사물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들의 종류가 무한하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텅 비어있는 어항의 종류를 0이라고 가정했을 때, 임의의 영원불멸의 사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어항의 종류 또한 [무한]이라는 수로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즉, 어떠한 어항의 종류의 범위는 (무한, 무한)이 되어버린다.

다만, 단순히 종류의 수가 무한하다고 해서 종류의 범위 또한 "무한"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나타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숫자의 범위에는 3.14259... 와 같이 수없이 많은 소수점들을 포함하는 무리수도 무한정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에 [0, 1]과 같은 조그만 숫자의 영역을 표기한다 하더라도 이 두 숫자들 사이에는 무한하게 많은 종류의 수들이 위치할 수 있다. 예컨대 0.00000000... 과 같은 소수에서 시작하여 무한히 많은 변화를 거쳐 9.99999999... 가 되는 식으로 1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는 즉, 어항 속의 사물들이 제 아무리 무한한 가지 수의 조합을 이룰 수 있다 하더라도, 어항 그 자체가 취할 수 있는 종류의 범위는 [a, b] 이렇게 두 개의 임의의 상수들로도 나타낼 수 있음을 뜻한다. 이 두 상수들이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이 둘 사이에는 어차피 무한한 갯수의 소수들이 어항의 각 종류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아까 말했던 찻잔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 이제부터 "찻잔이 없는" 어항의 종류의 범위는 [0, 10]으로, "찻잔이 있는" 어항의 종류의 범위는 [1, 10]으로 나타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1이나 10은 임의로 지정한 숫자에 불과하다). 여기서 0과 1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수들은 "찻잔이 없어야만" 어항이 취할 수 있는 종류들을 상징한다. 즉, 찻잔이 있는 어항과 없는 어항 사이의 차이점은, "종류의 스펙트럼이 0에서 1 사이의 수를 포함하냐 안 하냐"의 차이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종류의 값이 0.25인 어항이 하나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어항 속에 아까 말했던 찻잔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