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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결과 - 2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3

지금까지의 인과관계에서 변수로 사용한 "움직임"이라는 단어는 사실 의미가 굉장히 모호하다. 움직임이라는 것은 속력이 될 수도 있고, 가속도가 될 수도 있으며, 이동거리 또는 위치변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움직임"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사물의 이동경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라는 사물이 a라는 위치에서 출발하여 S자를 그리며 부드럽게 주행하다가 b라는 위치에서 멈추어 선다면, 우리는 자동차의 이동경로가 a지점과 b지점을 둘 다 가로지르는 하나의 S자 모양의 곡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곡선은 x(t)나 y(t)같이 시간을 입력받고 위치값을 출력하는 함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되는 함수들의 수는 공간을 이루는 차원의 수와 같다.

그렇다면 사물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따른 원인과 결과의 탄생을 점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앞서 보았듯이, 몇가지 당구공들의 충돌과 같은 단순한 문제는 상식적인 선에서 충분히 그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온갖 종류의 복잡한 운동과 특성을 가진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파악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고 사물들 간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라는 값을 부여받는 대상이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이동경로" (아니면 줄여서 "경로") 로 거듭나야 한다. 좀 더 쉽게 예기해 보자. 만약에 A라는 사물이 B라는 사물이 충돌하여,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만약에 우리가 A라는 사물 그 자체만을 변수로 생각하여 A와 B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려 한다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충돌하기 전의 A와, 충돌한 다음의 A는 서로 다른 인과관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충돌하기 전의 A는 "충돌이라는 사건"의 원인인 반면에, 충돌한 다음의 A는 "충돌이라는 사건"의 결과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과관계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물이 만들어내는 이동경로들 사이의 관계"라고 정의해야 마땅하다고 볼 수 있다. 똑같은 사물이라 할지라도 두가지의 개별적인 경로들을 가질 수 있고, 이 경로들은 서로에게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들로 이어져 있다.

이제부터는 "경로"를 기준으로 인과관계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여기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작점"과 "종착점"이다. 모든 경로는 시작하는 위치와 끝나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 만약에 아까 보여줬던 "충돌 시의 B의 움직임"이라는 이동경로를 Bc경로라고 가정한다면, Bc경로의 "시작점"은 A와 B가 충돌하는 지점이고, Bc경로의 "종착점"은 B와 C가 충돌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A와 B가 충돌하기 전의 B는 또다른 이동경로를 가지고 있었고, B와 C가 충돌한 다음의 B도 또다른 이동경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경로의 연속성에 관한 것이다. 만약에 자동차라는 사물이 아무런 주변 환경의 방해 없이 도로 위를 질주한다면, 현재 자동차의 경로는 단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설사 자동차의 운전자가 핸들을 꺾어서 자동차로 하여금 방향을 바꾸도록 만든다 할지라도, 이는 자동차의 외부에 존재하는 또다른 존재에 의한 방향전환이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는 여전히 동일한 경로에 속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에 갑자기 도로 위에 사슴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운전자가 목격하고, 그 사슴을 발견함으로써 흠칫 놀란 운전자가 자동차의 핸들을 꺾어서 방향을 바꾼다고 해보자. 이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방향전환에 의해, 기존의 것으로부터 분리된 새로운 경로가 탄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경로는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원인/결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기존 경로의 탄생 원인은 "운전자가 차에 탑승하는 행위" 였음에 반해, 지금 말한 새로운 경로의 탄생 원인은 "사슴이 도로 위를 가로막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존 경로가 만들어낸 결과가 "사슴과의 조우" 였다면,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낸 결과는 아직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사슴을 본 직후의 운전자가 자동차를 어느 곳으로 향하게 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중에 경로의 정의를 확고히 하기 위해, "운전자가 놀라서 자동차를 갓길에 세워 두었다" 라는 내용을 이 새로운 경로의 결과로 가정해 두자.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감으로써, "경로"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자. 이전 단락에서 설명했듯이, 본 상황에서 자동차는 첫번째 경로와 두번째 경로를 가지고 있다. 일어난 사건들을 시간대별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운전자가 차고에서 자동차에 탑승했다.
(2)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사슴과 마주쳤다.
(3) 자동차가 갓길로 빠져서 멈추어 섰다.

(1)번 사건이 일어난 위치는 첫번째 경로의 시작점이고, (2)번 사건이 일어난 위치는 첫번째 경로의 종착점이자 두번째 경로의 시작점이며, (3)번 사건이 일어난 위치는 두번째 경로의 종착점이다. 결국 (2)번 사건은 첫번째 경로를 소멸시킴과 동시에, 두번째 경로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위치"란 3차원이 아닌 4차원 공간에서의 위치를 뜻한다. 즉, 시간을 공간의 또다른 축으로 정의했을 때의 공간인 "시공간"에서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동일한 도로 위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이라 할지라도, 아침에 벌어진 사건과 저녁에 벌어진 사건은 서로 다른 "위치"에 속하며, 따라서 이들에게 연루된 경로들의 시작/종착점들은 위치적으로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