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원인이라는 것은 "조건"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듯 하다. 만약에 A라는 사건이 발생해야만 B라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면, 이는 A가 B의 발생조건이라는 뜻이다. A라는 사건이 없으면 B라는 사건도 없는 것이다. 다만 B라는 사건이 없다고 해서 A라는 사건도 없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B가 A의 발생조건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A사건이 B사건의 발생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A를 B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고, B는 A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결과라는 것은 원인에게 그 존재를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데, 반면에 원인은 결과가 있으나 마나 혼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원인과 결과는 상대적으로 서로에게 있어서 어느 시점에 속해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일단 우리가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에서부터 추리해 보자.
보통 원인이라고 하면 "결과의 과거"라고 정의할 수 있고, 결과라고 하면 "원인의 미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세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물질들이 서로에게 항상 (크건 적건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물들은 항상 서로간에 있어서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그러한 인과관계가 직접적인 것이냐, 아니면 간접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상황별로 다르다. 예를 들어서 서로 충돌하고 있는 두 개의 사물들은, 누가 보기에도 서로서로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직접적인 결과"라고 정의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사물들은 제 3자의 도움 없이 서로의 이동경로를 뒤바꾸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이동경로는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은 채로 원래상태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는 이들이 서로에게 충돌한다는 것 자체가 "원인"이며, 충돌에 의한 이들의 경로변화가 바로 그 원인의 "결과"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두 사물들 사이에 "간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되어야 할까? "간접적이다" 라는 말은 사람마다 그 정의가 조금씩 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정의하는 간접성의 의미는, "원인과 결과 사이에 제 3의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 3의 요소란, 제 3의 사물을 뜻한다. 예컨대 A,B,C라고 불리우는 3개의 당구공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혼자 아무런 주변환경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물은 A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스로가 스스로의 결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해당 사물이 자기 자신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일단 A라는 당구공이 먼저 자동적으로 움직이면서 B라는 당구공과 충돌했고, 그 충돌에 의해 튕겨나간 B는 C라는 당구공과 충돌했다. C는 그 충돌로 인해 빠르게 튕겨나가며, 당구대의 끄트머리에 있는 구멍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자, 이 상황을 잘 살펴보자. 일단 A는 스스로를 움직여서 B를 쳤고, B는 그에 따른 반동에 의해 C를 쳐서 구멍 속으로 빠뜨렸다. 그렇다면 여기서 A와 C는 서로 어떤 관계일까? 우선 시간대별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우선 A의 움직임의 원인은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우리는 A의 원인이 A이며, A의 결과도 A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제 B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 A라는 당구공은, 주변 환경의 아무런 개입 없이 당구대를 유유히 굴러가다가 마침내 B와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A의 움직임은 "충돌"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여기서 이 충돌은 A와 B의 이동경로를 둘 다 동시에 바꾸었고, 따라서 A의 결과는 A와 B, 이렇게 2가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만약에 B라는 당구공이 없었더라면 충돌이라는 것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이다. 이는 충돌 시의 A의 이동경로 변화의 "간접적인" 원인은 A 자신일지 몰라도 (결국 애초에 A가 안 움직였더라면 B가 있다 할지라도 충돌이 없었을 테니까),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충돌 당시의 시점에서의 충돌의 전제조건이었던 B 당구공임을 뜻한다.
방금 전에는 2개의 사물들만을 가지고 간접성과 직접성의 차이를 구분해 보았으나,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아까 명시했던 세번째 당구공까지도 고려하여 인과관계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A가 B를 때렸기 때문에, A의 결과가 A(간접적 결과)와 B(직접적 결과), 이렇게 2가지라는 사실은 이미 알 것이다. 이들 사이의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이 길게 풀어서 표기할 수 있다:
충돌 전의 A의 움직임 ---> 충돌 시의 B의 움직임 <---> 충돌 시의 A의 움직임
여기서 화살표의 방향은 "원인에서 결과를 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A와 B는 충돌 시에 서로의 움직임에 있어서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는 양방향 화살표로 나타내었다). 예컨대 [충돌 시의 A의 움직임]의 직접적인 원인은 [충돌 시의 B의 움직임]이고, 간접적인 원인은 [충돌 전의 A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충돌 전의 A의 움직임]의 직접적인 결과는 [충돌 시의 B의 움직임]이며, 간접적인 결과는 [충돌 시의 A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세번째 당구공인 C까지도 추가하여 인과관계를 나열해 보도록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충돌 전의 A의 움직임 ---> 충돌 시의 B의 움직임 <---> 충돌 시의 A의 움직임
(2) 충돌 시의 B의 움직임 ---> 두번째 충돌 시의 C의 움직임 <---> 두번째 충돌 시의 B의 움직임
여기서 말하는 "두번째 충돌"이란, B와 C 사이의 충돌을 뜻한다. 이제 이 새로운 인과관계의 화살표들을 잘 살펴보면 당구공들의 움직임들 사이의 원인과 결과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충돌 시의 B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은 2가지의 직접적인 결과들을 낳는다: "충돌 시의 A의 움직임"과 "두번째 충돌 시의 C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충돌 시의 A의 움직임"만을 유일하게 직접적인 원인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의 간접적인 결과는 "두번째 충돌 시의 B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