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물의 종류는 N차원 공간 안에 자리잡은 구불구불한 "경로"(곡선) 하나로 나타낼 수 있다고 지난번에 이야기한 바 있다. 경로가 취할 수 있는 형태의 가지 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물론 한가지 사물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경로만이 부여되어 있지만 말이다). 양쪽 꼭지점들이 서로 이어져서 하나의 고리 모양을 띄는 경로가 있을 수도 있고, N차원 공간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 안의 2차원 단면 하나만을 따라 뻗어나가는 납작한 경로가 있을 수도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경로가 있을 수도 있다. 경로의 모양과 위치가 곧 사물의 종류를 상징하며, 이는 경로만을 잘 살펴봐도 그것이 대표하는 사물의 온갖 특성을 다 파악할 수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경로를 이루는 각각의 위치는 "사물의 종류를 결정짓는 변수들의 값"을 나타내고, 각 위치에서의 경로의 기울기는 "사물의 종류를 결정짓는 변수들의 변위값 사이의 비율"을 나타낸다. 즉, 경로라는 것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변수들의 값과, 그것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척도인 것이다.
다만 여기서 헷갈릴 수 있는 사항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차원이 상징하는 바이다. N차원 공간을 이루는 차원들 중에는 시간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N차원 공간 안에 자리잡은 경로들은 제각각 가지각색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한 형태들 중에는 당연히 시간축을 따라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방향전환을 하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떠한 사물을 나타내는 경로는 시간의 미래와 과거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띌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시간축을 따라 A지점과 B지점이 형성되어 있다고 치자. A지점은 B지점의 과거이며, B지점은 A지점의 미래이다. 이제 P라고 불리우는 어떠한 경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로는 어딘가에서 시작하여, 우선 시간축 상에서 A지점을 가로지른 다음 B지점을 가로지른다. 그렇게 계속해서 미래로 나아가던 P경로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반대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P경로는 다시 B지점을 통과하고, 그런 다음에는 A지점을 통과해 버린다.
이 상황에서, P경로가 상징하는 사물은 우선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갔다가, 다시 미래에서 과거로 되돌아 온 것과도 같다. 그러나 잠깐! 여기서 정말로 유의해야 할 점이 한가지 있다. 그건 바로, "경로에게는 진행방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물을 나타내는 경로는 그야말로 사물의 종류를 결정지어 주는 "입체모형"일 뿐이지, 이를 마치 고속도로와 같은 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경로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왕복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해서, 사물이 그야말로 미래의 한 시점에서 뿅- 하고 사라져서는 과거의 한 시점에서 나타났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시간 또한 N차원 공간을 이루는 하나의 위치축에 불과하다. 사물이 항상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관찰자들)의 주관적인 시점이기 때문이다. 사물은 시간을 포함한 N차원 공간 안에서 그 어느 방향으로도 "이동하지" 않는다. 그냥 특정한 N차원의 위치들 위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는 "이동"의 개념은, 사물을 나타내는 경로의 기울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P경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P경로가 시간축의 A지점과 B지점 사이를 두번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은, 시간의 A지점과 B지점 사이에 2개의 사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는 경로가 처음에 A지점에서 B지점을 지나가는 부위에 속하는 사물이고, 또 하나는 경로가 B지점에서 A지점을 지나가는 부위에 속하는 사물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서서히 시간의 필름을 감아본다면, 우선 각자 P경로의 양쪽 꼭지점에서 탄생한 2개의 사물들이 있었는데, P경로가 B지점을 지나 미래에서 과거로 방향전환을 하는 바로 그 위치에서 서로 결합하면서 소멸해 버리는 시나리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반대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에 M이라는 경로가 하나 있고, 그 경로가 B보다 더 미래에 있는 어느 한 위치에서 시작하여 B지점을 지난 다음 마지막으로 A지점을 지나고, 그 다음에 과거에서 미래로 방향전환을 하여 우선 A시점을 지난 다음에 B시점을 지난 다음 끝을 맺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M경로가 나타내는 사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사물 하나가 탄생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사물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물들로 갈라져 버렸고, 이들은 그러한 상태로 A지점과 B지점을 지난 다음 미래의 어느 시점 (M경로의 꼭지점들) 에서 소멸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