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생각해 보자.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수없이 많은 양상을 띄고 있다. 예컨대 제 아무리 평범해 보이고 다양성이 없어 보이는 사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물에게는 자신만의 색깔, 밝기, 크기, 방향, 지리적 위치, 탄생/소멸시간, 재질, 모양, 속력, 가속력, 질량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들이 있다. 이 변수들의 양이 제각각 모두 결정되어야만 해당 사물도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물의 특성을 결정하는 이러한 변수들의 갯수가 N개라고 가정해 보자. 이 말은, 어떠한 사물 하나를 정의하려면 그것을 "N차원의 시공간 속에 위치한 하나의 점" 으로 가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각각의 차원 축은, 사물의 종류를 결정하는 변수 하나를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서 풀어야 할 의문점은, 바로 사물의 속력이나 가속력도 그러한 "종류의 차원들" 중 하나냐는 것이다. 사물의 속력을 나타내는 차원의 축이, 정말로 사물의 지리적 위치나 시간을 나타내는 축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따로 놀아야 할까? 속력은 알고 보면 위치의 변위값과 시간의 변위값 사이의 비율에 불과하다. 만약에 어떤 사물이 공간의 x축을 따라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를 알고 싶다면, 단순히 x축과 t축(시간축) 사이에서 사물이 이동한 경로의 기울기를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굳이 속력을 나타내는 새로운 차원 하나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경로"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방금 보았듯이, 사물의 속력을 알아내려면 단순히 위치나 시간의 축들 뿐만 아니라, 그 축들 상에서 사물이 지나간 발자취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이동경로야말로 그 사물의 "종류"를 결정짓는 근본체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떠한 사물의 형태를 결정짓는 데에 N가지의 변수들이 필요하다면, 이는 곧 사물의 형태를 "N차원의 시공간 안에 있는 하나의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지된 점만으로는 사물의 종류를 완전히 묘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것도 N차원 시공간을 이루는 차원들 중 하나이고, 이 시공간 안에 점 하나만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사물의 종류를 오로지 기나긴 시간의 한 순간(찰나)만을 기준으로 판별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가로등이라는 사물은 낮에는 어둡고 밤에는 밝은데, 만약에 이 사물을 N차원 시공간 안의 오로지 하나의 고정된 점만으로 표현한다면, 결국 가로등에 대한 묘사는 "어둡다"와 "밝다" 중의 하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사물을 온전하게 묘사하려면, 그 사물이 생성될 때부터 소멸될 때까지의 모든 변화과정들을 사물의 종류에 대한 정의에 사용하여야 한다. 예컨대 아무리 똑같은 모양을 한 2개의 사물들이라 할지라도, 각자 다른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면 이들은 "다른 종류의 사물들"로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사물의 "형태"를 구성하는 변수들의 갯수가 N개라면, 그 사물의 형태는 N차원 시공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사물의 형태라는 것은 항상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점은 다양한 속도와 방향으로 자유롭게 곡선을 그리며 시공간 속을 유유히 헤집고 돌아다닌다. 그렇게 탄생한 곡선은 사물의 "경로"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경로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경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사물의 형태를 나타내는 가상의 공간" 상에서의 이동경로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건데, 사물은 N차원 시공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 점 하나가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그려낸 곡선("경로") 하나로 그것의 종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경로의 각 끄트머리는 사물의 탄생시점 또는 소멸지점이다. 이때, 사물의 "소멸"이 무조건 시간을 기준으로 "탄생" 후에 일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경로의 각 끄트머리는, 관찰하는 이의 시점에 따라 탄생지점으로 정의될 수도 있고, 소멸지점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시간은 N차원의 시공간을 이루는 수많은 차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사물은 N차원 시공간에서의 이동경로가 무슨 방향으로 뻗어나가냐에 따라, 시간 상으로는 과거로 이동할 수도 있고 미래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는 사물이 시간여행을 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N차원 시공간에서는 시간도 나름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물의 기준에서 봤을때 시간은 항상 일정하고 정상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의 이동경로는 모든 시간을 하나의 입체적 모형 안에 포괄하는 존재이고, 그 안에서 시간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시간축과 공간축으로 이루어진 2차원 시공간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곳에는 어떠한 사물이 하나 있는데, 사물의 이동경로는 정확히 시간축에서의 위치와 공간축에서의 위치가 양적으로 일치하는 지점을 따라 뻗어있다. 한마디로 두 개의 축들 사이를 정확히 45도 각도로 가로지르는 대각선이 바로 사물의 이동경로라는 뜻이다. 만약에 그 사물이 속한 시간이 5라면, 그것이 속한 공간도 5이다. 만약에 사물이 속한 시간이 -9라면, 그것이 속한 공간도 -9이다. 이런 식으로 변수들의 값이 항상 일치하는 위치들의 집합을 해당 사물의 경로로 정의하자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사물이 속한 시간이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가 궁금해질 것이다. 만약에 시간이 (-)방향으로 흐른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사물은 "공간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라고 묘사되어야 한다. 반면에 시간이 (+)방향으로 흐른다고 가정한다면, 사물은 "공간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라고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다고 하여야 할까? 현 상황에서 "시간의 절대적인 진행방향"을 정하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가 과거 또는 미래라고 부르는 시간의 방향들은, 결국 우리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시공간의 방향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땅 위의 한복판에 선 채로 남쪽을 바라보면서, "남쪽이 바로 공간의 진행방향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남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해당 사람의 관점만을 절대적인 척도로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시간의 한 방향만을 공통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이러한 다수의 힘이 관찰자의 지위를 벗어나 "절대적 기준"으로 거듭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