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과거"와 "미래"를 시시때때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이 순간인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앞서 말한 두가지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현재를 결정하는 것은 과거이지, 어떻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미래)이 현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상식적으로 이게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사람은 항상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만을 바탕으로 행동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은 많은 시간을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데에 투자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평소에 수도 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나름 예측한 미래를 바탕으로 현재 본인이 할 행동을 결정한다. 따라서 현재 자신이 하는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물은 단순히 과거에만 입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가 바라본 "미래에 대한 이미지"에도 입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간은 하나의 선과도 같다. 인간은 각자 시간이라는 선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서 선 위를 걸어가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간의 선"은 그 자체가 곧 하나의 "세계"라고 말해도 무관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남과 동일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가지지만, 알고 보면 서로 완전히 분리된 세계들 속에 사람이 각각 한 명씩 살고 있는 것이다. 개개인의 영혼마다 하나씩 주어지는 이 세계들은 하나의 초월적 세계에서 파생된 그림자들로, 이들은 초월적 세계가 만들어내는 "비슷하지만 부정확한" 이미지들이다. 가령 누군가는 태양이 푸른빛으로 보이는 세계 속에 살고 있을 수도 있고, 또다른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빛이 남들보다 더 밝게 보이는 세계 속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길과도 같다는 말이다. 그 길에는 "앞"과 "뒤"라는 두 개의 방향들이 존재하는데, 물론 여기에서 앞은 미래를 나타내고 뒤는 과거를 나타낸다. 아까도 말했듯이, 현재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라는 두가지의 조건들 상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자동차가 이미 지나간 구간은 자동차의 과거이고, 앞으로 지나가게 될 구간은 자동차의 미래이다. 여기서 자동차가 현재 어떤 속도로 주행하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그 중 하나가 "과거"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만약에 자동차가 지나쳤던 자리에 작은 돌멩이들이 깔려 있었다면, 운전자는 타이어가 날카로운 돌을 밟아 펑크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비교적 낮은 속도로 주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재를 결정한다는 것은 모두들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다만 여기에서 의문점을 하나 던져 보자. 자동차가 미래에 처하게 될 상황이, 현재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주행속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을까? 이는 물리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지만, 차의 엑셀을 밟고 있는 운전자의 두뇌를 기준으로 풀어본다면 꽤 쉽게 답이 나온다. 정답은 "과거나 미래에 상관없이 모든 시간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은 자동차의 주행속도에 항상 과거와 미래를 둘 다 생각하면서 "현재 해야 할 행동"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고속도로 위에서 차를 몰고 있는데, 그가 방금 돌멩이들이 수두룩한 구간을 뚫고 지나감으로써 마침내 장애물이 전혀 없는 평지 위를 달리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돌멩이들이 수두룩한 구간" 위를 달리던 순간은 운전자의 과거로써, 이것은 분명 운전자가 현재 자동차를 모는 속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왜냐하면 타이어가 돌조각을 밟는 경험은 운전자에게 충분히 위협을 주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는 운전자로 하여금 차의 속도를 줄이면 줄였지, 늘리지는 않도록 하는 데에 이바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 또한 생각해 보자. 방금 말한 상황에서 운전자의 눈 앞에는 정말 아무 장애물도 보이지 않는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가 펼쳐져 있다. 그 도로는 시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한 검은색을 띄는 아스팔트 도로와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차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운전자의 예상대로라면 이제부터 그의 자동차는 이 완벽한 도로 위를 달리면서 그 어떤 돌멩이도 밟을 일이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운전자는 생각할 것이다: "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로상에 결함이 많아서 속도를 줄여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부터는 차가 안전한 길에 진입할 것이니 마음놓고 빠르게 달려도 되겠구나". 결국 그는 과거의 안좋은 경험에 의해 "속도를 줄인다"는 반사적인 행동을 하려다가, 눈앞에 펼쳐진 미래를 바라보자 "속도를 늘린다" 라는 또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즉, 위의 경우를 가정해 봤을 때,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 그리고 미래에 기반하여 현재를 건설해 나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실제로 일어날 미래가 현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를 만드는 미래는 언제나 "관찰자가 예상하고 있는 미래"일 뿐, 실질적인 미래는 그 모습을 온전히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하나의 곡선으로 가정한다면, 미래는 이 곡선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형태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각각의 갈래는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나타내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미래의 갈래들 중 하나만이 선택되어져서 "현재와 과거의 일부"로 거듭난다 (나머지 갈래들은 "발생하지 않은 사건"들이므로, 기존에 있던 시간의 선에서 떨어져 나가 각각의 독립적인 시간들(세계들)로 둔갑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현명한 인간이라면, 현재 해야 할 행동을 결정할 때 되도록이면 여러 갈래의 미래들을 고려해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 바라보는 미래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분포"에 불과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가능성들을 되도록이면 많이 살펴보아야만 가장 바람직한 현재를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운전자는 눈앞에 펼쳐진 도로가 매끄럽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앞으로는 돌을 안 밟을 것이다"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그래도 혹시나 내가 못 보는 사이에 돌멩이 하나를 또 밟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속도를 올리되, 위험할 정도로 너무 올리지는 않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에는 여러 개의 갈래들이 있고, 이 갈래들을 고려하여 관찰자는 새로운 현재를 탄생시킨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미심쩍음을 느낄 수 있다. 아까 설명했듯이, 미래는 가능성의 분포이기 때문에 여러 개의 갈래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갈래들의 종류는 "현재"라는 순간이 어느 곳, 어느 사건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결국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지금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란 정확히 무슨 속성을 가지는 시간대란 말인가? 과거라는 것이 흔히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이미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불과하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오직 하나의 갈래만을 따라 뻗어있는 이러한 과거의 특성은 여러 갈래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미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과거와 미래가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대들이라고 가정해야만 맞는 말이 아닌가?